📍암스테르담
라익스 미술관은 암스테르담의 국립 미술관으로, 네덜란드 왕 루이 보나파르트에 의하여 1808년에 창설되었다. 규모가 상당한 만큼 현재는 약 30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다양한 작가와 종류의 그림이 많았기 떄문에 하나하나 분석할 수는 없지만, 그 많은 그림들 중에서 미술사와 연결되어 의미가 인상깊었던 것들과, 네덜란드의 역사적 배경이 담긴 바니타스화에 대해서도 다루어보겠다.
바니타스는 16-17세기의 네덜란드 정물화 사이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주제다. 이는 일반적으로 주로 미술 분야에서 인생의 덧없음과 죽음의 불가피성의 모티프나 그 주제를 지칭하는데, 이를 중심으로 한 바니타스 정물화는 중세 유럽의 흑사병과 30년전쟁이 일어난 역사적 시기에 많이 그려졌다. 바니타스의 어원은 ‘공허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 형용사 비누스(vanus)에서 왔고, 공허’, ‘헛됨’, 또는 ‘가치없음’, 전통적인 기독교인들의 관점으로 세속적인 물건과 일시적이고 무가치한 것을 추구하는 걸 뜻한다고 한다. 성경에 보면, 전도서 1장 2절에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뜻의 “Vanitas vanitatum, et omnia vanitas”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은 바니타스 정물화의 핵심 주제로 사용되었다.

Vanitas(1630)-Peter Clasez
바니타스 정물화의 특징은 이전에 그려졌던 정물화보다 절제되고 어두운 색감이며, 바니타스의 예술적 의미인 ‘삶의 덧없음’ 을 표현하기 위해 해골이 자주 소재로 등장한다. 여기서 해골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 죽음과 그 이후의 허무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 이후에 남겨진 유해에서 느껴지는, 어떤 것도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허망한 감각을 일깨운다. 특히 흑사병과 30년전쟁이 판을 벌인 중세 유럽의 역사관에서 이 해골은 그런 이름 없는 수많은 죽음들을 환기하며, 그걸 증언하는 상징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또 자주 소재로 사용되는 모래시계, 시든 꽃, 촛불 등은 모두 현재 그 순간의 상태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지 못하고 시간에 흐름에 따라 변하게 된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천천히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과, 꽃이 점점 시들어 가는 것, 그리고 촛대가 녹으면 꺼지는 촛불 이 모든 게 영원함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표현하고, 이 모든 물체들이 ‘현재진행형’ 에서 ‘과거형’ 이 되고 난 후의 공허함과 무의미함을 상상하게 한다.

Still life with oysters, a rummer, a lemon and a silver bowl (1634)-Willem Heda
이 작품은 바니타스 정물화라고 할 순 없지만, 바나티스 정물화와 일반 정물화 사이의 과도기에 그려진 그림이다. 보면 해골을 그리지도 않았고, 중세 유럽 정물화에서 제일 많이 보이는 꽃도 그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정제된 색감과 질감을 사용했다. 그려진 모든 정물들은 모노톤의 채도낮은 색감들이 사용되었고, 식기와 접시, 심지어 식탁보까지 비슷한 질감으로 느껴진다. 이는 아 작가만의 화법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중간, 확립되지 않은 그림이다. 하지만 그려진 모습을 보면 정말 사진같고 당장이라도 나올 거 같이 묘사가 깔끔하고 정교하게 표현된 작품이기도 하다.
라익스 미술관에서 만난 바니타스 정물화들은 내게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해 생각하게 해주었다. 깊은 생각도 잠깐, 바니타스 정물화 말고도 역사적인 의미를 품은 다른 그림들도 다양하게 볼 수 있었다.

The Night Watch(1642)-Rembrandt
이 작품의 이름은 “The Night Watch” 이고, 해석하면 ‘야경’ 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원래는 밝은 대낮에 행진을 준비하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이였으나, 강한 명암대비와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그림 표면에 생긴 유약 때문에 더 어둡게 보였고, 그로 인해 후에 “야경”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렘브란트가 암스테르담의 시민 방위대를 그린 작품이고, 렘브란트의 뛰어난 빛과 그림자 표현, 인물들의 역동적인 모습과 더불어 당시 사회상을 담고 있어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당시 암스테르담 시민 방위대는 실제로 문을 지키고, 치안과 화재 대응 등의 공공서비스도 담당했다. 그러나 전투보다는 시민 보호와 의식 활동 중심이였다고 한다. 사실 위에 보이는 사진은 원래 작품의 복사본이고, 실제 작품은 지금 복구 작업 중에 있다.

이게 현재 복구중인 실제 작품이다. 설명글을 보니 거의 400년 된 이 작품이 수 세기 동안 많은 시련을 겪어서 최근 몇 년 동안 박물관은 그림의 상태를 최대한 완벽하게 파악해 최적의 처리 방법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보존 전문가들은 오래된 니스칠과 이후 덧칠된 부분을 꼼꼼하게 제거하고 있다고 한다. 이 작품이 훼손된지 몰랐는데, 찾아보니 화학 반응으로 인한 변색, 그리고 1911년에는 한 남성이 칼로 그림을 훼손하려 시도했고,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작품을 돌돌 말아 보관하는 과정에서 표면이 일부 손상되기도 했다 한다.

이 작품은 인형의 집이라고 불리는 작품이다. 아기자기하고 귀여워 보이지만 실제 이 작품은 당시 암스테르담 상류층의 집 구조를 표현한 작품이라 가까이서 보면 굉장이 고급스럽고 우아하다. 가구랑 사람, 방 분위기나 벽지 하나하나가 다 깨알같고 엄청 섬세하게 만들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나도 인형의 집을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The Milkmaid(1657-1658)-Johannes Vermeer
이 그림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그린 걸로도 유명한 요하네스 페이메이르가 그린 유화 작품 중 하나인 “the milkmaid” 이다. 베르메르는 렘브란트와 더불어 네덜란드의 ‘황금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인 만큼, 일상생활의 모습을 담은 풍속화들로 명성을 얻었다. 특히 그는 빛의 표현, 그리고 색채의 조화에 탁월했는데, 파란색과 노란색을 조화롭게 사용하는 그의 특유의 색감 감각은 이 작품에서도 돋보인다. 이 그림에서 여인은 노란색 상의에 파란 앞치마를 두르고, 굴곡 없이 단단한 빛을 받아 마치 조각처럼 화면에 고요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에서도 볼 수 있는 특징으로, 두 작품 모두 페이메이르가 파란색과 노란색을 얼마나 조화롭고 깊이 있게 다뤘는지를 잘 보여준다.
The Milkmaid는 왕후나 귀족이 아닌 서민 여성, 즉 평범한 하녀를 그 중심에 둔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다. 그녀는 부엌 한켠에서 빵과 우유를 다루며, 온전히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다. 화려하거나 이상화된 미인이 아닌, 실제로 존재할 법한 여인의 표정과 동작이 담겨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친근하고 현실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단순히 평범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부드러운 자연광은 그녀의 손끝과 질감 있는 벽면, 그리고 우유가 담긴 항아리까지 섬세하게 감싸며, 화면 전체에 정적이면서도 깊이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한, 페이메이르는 공간의 구성에도 매우 신중했다. 벽에 걸린 바구니와 질박한 부엌 도구들, 그리고 그녀가 서 있는 바닥 타일까지도 철저하게 계산된 구도 안에 배치되어 있으며, 이는 일상의 소박함을 마치 성스러운 정물처럼 느껴지게 한다.

Still Life of Flowers in Alabaster Vase(1783) -Gerard van Spaendonck

Stilleben-Maria van Oosterwijk Vanitas
이 두가지 작품은 다 꽃을 그린 정물화라서 하나로 묶었다. 멀리서 보는 것도 충분히 압도당할 만큼 멋있지만, 사실적으로 묘사된 꽃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그림같지 않고 진짜같다는 생각이 든다. 두 그림 모두 다 뚜렷한 빛 방향은 없지만, 꽃 이외에도 모든 정물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그려서 정말 튀어나올 거 같이 그려낸 것이 인상이 깊다. 빛방향을 정하고 그걸 과장해서 덩어리를 만드는 방법도 입체를 표현하는 한 방법일 수 있지만, 이렇게 묘사만으로 사실감이 느껴지게 하는 건 정말 대단한 작업이다.
앞서 설명한 그림들 말고도 더 좋은 작품들도 많았고, 내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인 모네의 그림들도 많았지만, 미술관 자체가 너무 넓다 보니 이번에는 정리할 여건이 되지 않았다.
현대 근대적인 전시들을 구경하는것도 물론 재미있지만, 이런 클래식한 작품들을 접함으로써 예술에 대한 이해도도 높이고 미술사 공부도 더 할 수 있는 같다. 모던한 작품들은 개인의 생각을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이런 중세 작품들은 그 당시의 사회상이나 어떤 시대적인 감상을 담고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예술은 단순히 그림을 그리거나 조각을 만드는 것이 아니고, 사회에 직접적으로 맞닿아있는, 어쩌면 역사와 문화, 경제와 정치를 거스르는 하나의 분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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