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alette Passport

seeing the world, sketching in words

📍네덜란드

이번에 한국에서 삼촌이랑 숙모가 놀러와 네덜란드의 수도인 암스테르담으로 1박2일으로 짧게 여행을 갔다 올 수 있었다. 짧은 여행였기에 가고 싶었던 많은 미술관들을 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두개나 다녀왔다.

첫째날 봤던 전시는 반고흐 미술관에서 진행된 안젤름 키퍼 특별전이였다.

안젤름 키퍼는 독일의 화가이자 작가인데, 잘 몰랐던 작가이지만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의 독일 사회의 어두운 역사와 상처를 다루는 작품들로 잘 알려져 있다고 한다. 또 자신의 작품에 짚, 풀, 납 같은 재료들을 사용해서 작품에 텍스쳐를 흥미로운 방법으로 넣는 걸로도 유명하다. 전시가 반 고흐 뮤지엄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두 작가가 어떤 연결성을 가지고 있나 했는데, 들어가자마자 반 고흐와 키퍼의 연관성에 대한 설명 글을 찾을 수 있었다.

보아하니, 반 고흐를 상징하는 해바라기도 키퍼에 작품에서 많이 등장하고, 수평선을 극도로 높거나 아니면 극도로 낮게 설정하는 것, 그리고 문학을 예술의 한 부분으로써 받아들여 작품에 수용하는 것까지 비슷한 점들이 많았다.

키퍼가 반 고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건 작품 자체를 보면서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정말 인상 깊었던 그림은 바로 해바라기를 이용한 두 작품이다. 하나는 조각이고 하나는 그림이지만, 두 작품 모두 한 관점 안에 해바라기의 성장과 시듬을 새겨넣어서, 한 식물의 일생을 두개의 작품으로 담아낸 거 같아 보였다.

Rising, Rising, Falling Down(2016)Anselm Kiefer

Sol Invictus(1995)-Anselm Kiefer

조각에서는 해바라기가 천장에서부터 나와 점점 아래로 자라면서 시들어 나중엔 결국 씨가 되는데, 이를 씨는 또 땅에서 자라난다는 개념으로 보았을 때, 죽음이라는 존재가 마냥 어떤 것의 끝이 아니라, 돌고 돌아 반복되는 어떤 삶의 순환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말라있는 땅과 잔뜩 시든 해바라기는 거꾸로 매달려 책을 향하고 있는데, 여기서 책이라는 매체는 죽음 이후에도 남는 무언가, 예를 들어 기억, 사상, 유산같은 것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해바라기 씨가 그 위에 흩뿌려져 있다는 건, 마치 그 생의 마지막 순간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되고, 전달되며, 다시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걸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 해바라기 그림의 이름은 Sol Invictus, 직역하면 무적의/정복되지 않은 태양 이라고 할 수 있다. 키퍼는 이 상징성을 권력과 재생의 주제로 작품에 표현하고 있다. 바닥에 씨 있는 부분에 의식을 잃은 것 같은 사람 시체를 그려놓은 것을 보아 해바라기의 시듬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거 같았다. 가까이에서 보니 실제 해바라기 씨를 사용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 작품도 아까 조각에서 씨가 책 위에 흩뿌러져 있던 것처럼 떨어진 씨앗이 사람 위로 떨어지는데, 이 씨앗들이 밑에 누워있는 사람의 죽음에 더 비극적이고 잔인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 그림은 오히려 밝은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해바라기의 시듬과 사람의 죽음 사이의 은유법을 잘 녹여내어 죽음이라는 존재를 표현했다. 그래서 직접적인 죽음의 무서움을 느끼기보단 어딘가 기이하고 소름끼치는 분위기를 주며 죽음을 표현한다.

이 두 해바라기 작품들을 보고, 씨에서 새싹을 키움으로써 새 생명이 생기는 것에 기반이 되는 ‘땅’이라는 요소가, 어쩌면 일생을 마무리한 씨앗 같은 존재가 다시 되돌아가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보았을 때 생과 사가 언듯 가깝게 느껴졌다. 사실 삶의 시작과 끝이라고 이야기하면 둘이 너무 멀게 느껴지지만, 작품에서 그 끝자락에서 다시 새싹이 트이는 모습을 보면 생과 사의 경계는 정말 한 끗 차이가 아닐까?

해바라기와 관련된 이 두 작품 말고도 자연의 재료를 그대로 사용해서 그림에 텍스쳐를 넣은 그림들도 눈에 띄었다.

The Starry Night(2019)Anselm Kiefer

이 작품은 텍스쳐의 표현도 신기하게 표현되었지만, 반 고흐의 대중적이고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을 떠올리게 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 사실 이 작품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대한 오마주 작품이다. 이는 시대가 다른 두 화가 사이의 어쩌면 약간 일방적일 수도 있는 유대감을 보여준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깊고 어두운 밤에 고요함을 보여준다면, 키퍼의 ‘별이 빛나는 밤’은 한낮에 숲에서 부는 바람에 더 가까운 거 같다. 다른 느낌으로 두 작품 다 각기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하지만 한낮에 숲에서 부는 바람이라고 다 시원하고 기분좋지는 않다. 아까 말했다시피, 키퍼의 작품들은 세계2차대전의 어두운 부분에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밝은 색감을 사용했을지라도 어딘가 불편하고 따가운 느낌을 받는 사람들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키퍼의 시그니처인 텍스처를 표현하는 기법이 무엇인가 뾰족하고 날카로운 느낌을 주기는 하는 거 같다.

Das Letzte Fruder(2019)-Anselm Kiefer

Waldsteig (2023) – Anselm Kiefer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그림들도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저 가로숲길 그림은 또 다른 느낌으로 편안함이 느껴진다. 그림에 텍스처를 표현한다는 건 그림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평면 그림 위에 질감들을 표현함으로써 작품 자체를 더 깊이 있게 표현해주는 거 같다. 그림에 깊이가 생기게 되면 작가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말이나 아니면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을 더 정확하고 섬세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그림을 그릴때 질감을 그려서 표현하기만 해봤지 아직껏 실제 재료들을 이용해 질감을 표현해본적은 없는데, 그렇게 하기 시작하면 저도 그림의 깊이를 더 사실감있게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이건 전시장 2층 사진이다 1층은 반 고흐와 키퍼의 연관성을 보여주는 듯했다면, 2층에는 키퍼가 추구하는 현대적인 스타일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나는 반 고흐와 키퍼의 차이점, 그리고 반 고흐의 영향을 받은 키퍼의 작품에 집중하고 싶었고, 2층의 분위기와 그림에 사용된 색채가 칙칙하고 묘한 느낌을 주는 거 같아 2층이 1층보다는 이목을 끌진 못했던 거 같다. 그래서 사진도 안 찍고 슥슥 보고 넘어갔는데, 집에 와서 서치해보니 키퍼가 세계2차 대전 시대에 유년기를 보내며 후에 작가가 된 후에도 작품에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이때 알았다. 아름답지만 어두운 느낌의 풍경화들을 보고 어딘가 허망하고 공허한 느낌이 들었던 게 그것 때문이였을까?

이번 미술관 총평은, 잘 모르는 작가였지만 충분히 그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전시였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다. 분명 반 고흐 뮤지엄에 갔어도 좋았겠지만, 안젤름 키퍼라는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어서 너무 좋은 경험이였고,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전쟁의 영향을 받은 키퍼의 현대 예술 작품들도 분석하고 이해해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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